무릎(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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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지 「기침」
1 앉아 무릎을 감싸면 팔 안쪽에서 웃자라던 차가운 언어들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삼켜야 하는 기침처럼 서둘러 지운 다짐들을 혼자 손끝으로 몰래 닦아보면 따뜻한 비가 우리의 온도와 맞는다는 인사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고 사람들이 실은 아름다운 것을 늘 사랑했다는 기침 같은 고백일 수 있겠다 단지 어느 너머에 발 디딘 날 2 가장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누가 봤을까봐 세계를 기웃 보며 서둘러 기분을 잃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한 번쯤 말해줘야 할 내가 많은 꿈에 있다 그늘에서 마르지 못한 기분이 기침으로 나왔다고 고백해도 좋다면 그런 낮에는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웃는 아이의 얼굴이 신 같았다 김향지, 얼굴이 얼굴을 켜는 음악, 문학동네, 2021
2021.06.06 -
서효인 「부평」
처음 가본 도시에서는 두리번거리게 된다. 높게 쌓아 올린 어떤 냄새가 정수리를 잡아당긴다. 그곳은 버스의 도시였다. 다친 무릎에 빨간약을 바르듯 버스는 도로를 물들였다. 해가 강을 넘어 바다에 닿을 때 사람들은 투명한 무릎을 벤 채 눈을 감았고 곧 떠야 했다. 부평이었다. 고개를 들면 점점 커지는 욕망들이 걷잡을 수 없는 몸짓을 하고 정수리에 침을 뱉었다. 서쪽으로 아니 동쪽으로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빨갛게 물들어간다. 정수리가 사나운 시절을 지나 빨간 속살을 드러낼 때까지 우리는 두리번거린다. 모든 도시는 초행이다. 냄새가 난다. 넘어지는 사람들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침을 삼킨다. 소독약이 도로를 빨갛게, 무릎 그리고 닫은 눈꺼풀 사이로. 서효인, 여수, 문학과지성사, 2017
2021.01.03 -
김사인 / 나비
김사인 / 나비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 몰라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치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 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울음일까 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 시린 적막 하나 지고 가는데, 대체 어디까지나 가나 나비 그 앞에 고요히 무릎 꿇고 싶은 날들 있었다 김사인 / 나비 (김사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5.29 -
신해욱 / 色
신해욱 / 色 나는 과도한 색깔에 시달린다 내가 나빴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져서 색깔을 훔치곤 했다 천연의 것들 인공의 것들 미안 너의 그림자도 건드렸다 심지어는 물에게까지 그랬다 색깔들이 불규칙하게 차올라서 나는 쉽게 무릎이 꺾인다 나는 눈동자가 커다랗고 내가 너무 무거운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것들은 정말 많고 네가 있고 나는 녹이 슬고 나는 호흡 곤란 오래오래 그럴 것이다 신해욱 / 色 (신해욱, 생물성, 문학과지성사, 200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4.10 -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사람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사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지는 않아요 나는 절룩거렸고 나는 뒤로 걸었고 어제는 청어를 먹고 드라이브를 떠났어요 가시 많은 고슴도치처럼 껴안았죠 우리에겐 지도가 없었고 난 어제, 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건 오른쪽이나 왼쪽일 거예요 흙먼지 속에서 뿌옇게 지워진 내가 걸어왔다면 아마 거길 거예요 사람들은 아주 가끔 신기한 듯 물었죠 너는 참 이상하게 걷는구나, 길을 끌고 다니듯 그건 아마 내 안의 길들이 무릎 아래로 끌어당기기 때문이겠죠 당신이 걷는 길에 내 발자국이 찍혀 있다면 끝나지 않는 골목과 높은 담들 늙어서도 울고 있는 아이를 지나 그렇게 왔을 거예요 그건 긴긴 금요일의 길 위에서였을 거예요 김경인 / 금요일에서 온..
202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