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3)
-
박송이 / 아파트
박송이 / 아파트 닥치는 대로 혼자가 될 때 혼자 있는 것들과 눕고 싶을 때 누울수록 깊어지면서 우리는 그곳을 갯벌 빛이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가 단 한번이라도 서로의 속살이 된 적이 있을까 우리는 말놀음이나 할 줄 알지 빈 조개껍데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기르던 발톱을 버린 갯벌 밭에서 호주머니에 나란히 누워 속살이 열리기 전까지 바깥은 그저 문이다 박송이 / 아파트 (박송이, 조용한 심장, 파란,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8.30 -
황인찬 / 실존하는 기쁨
황인찬 / 실존하는 기쁨 그는 자꾸 내 연인처럼 군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와 팔짱을 끼고 머리를 맞대고 가만히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았지만 못 본 체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확신은 없다 아파트 단지의 밤 가정의 빛들이 켜지고 그것이 물가에 비치고 있다 나무의 그림자가 검게 타들어 가는데 이제 시간이 늦었다고 그가 말한다 그는 자꾸 내 연인 같다 다음에 꼭 또 보자고 한다 나는 말없이 그냥 앉아 있었고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 손을 잠그면 다시는 꺼낼 수 없을 것 같다 황인찬 / 실존하는 기쁨 (황인찬,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8.20 -
송희지 / 난바(難波)
송희지 / 난바(難波) 난바는 병원에 있었다. 수의사는 감탄했다. 약국에서 죽은 토끼 냄새가 났다. 멜빵바지 입은 꼬마가 엉엉 울고 있었다. 엄마가 닥치라고 했다. 안전하게 사랑하세요 초박형 콘돔 L사이즈. 아이의 내일을 책임지세요 스무 가지 야채 들어간 어린이 주스. 꼬마는 주스를 먹다가 토한 것이다. 모든 일이 처음이었던 캐셔는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삼, 삼, 삼… 삼천 원입니까? 난바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식사 했다. 난바는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쳤다. 배달원이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하나같이 먼 곳으로 가는 택배들입니다요. 상담원 김미영 씨가 어저께 아빠의 부고(訃告)를 들었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은 저번 달 어머니가 보셨던 산술점에서 기인했다고 했다. 미영 씨가 눈물을 훔쳤다. 삼..
2020.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