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날씨 없는 날씨

2020. 4. 30. 17:48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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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날씨 없는 날씨

일기예보를 보고 내일의 의상을 결정한다

내 사회성의 구 할 역시 날씨로부터 온다

날씨가 없었다면 내 어눌한 관계들은 다

파국을 맞고 말았을 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묻는 말도

취침 전의 관심사도 틀림없는 날씨 이야기다

캘리포니아 해변에 사는 제자가 보내온 이메일도

날씨로부터 시작한다 날씨는 만국공통어,

나이가 들면서 대기의 흐름에 예민해진다

정작 하늘 한번 본 적이 없이 하루를 마감하면서도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몸과 맘도 함께 반응을 한다

일기예보를 빠짐없이 살피면서 나는 늙어가나 보다

감기 걱정을 하고 미세먼지 마스크를 준비하면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빗속을 빗줄기처럼 뛰어다니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눈사람을 만들 줄 아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있나 보다

꺾인 몸에 깃드는 천문

갈수록 나는 날씨에 점점 가까워져간다

 

 

 

손택수 / 날씨 없는 날씨

(손택수,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창비,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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