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하 / 카사 로사*

2020. 7. 9. 21:29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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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 카사 로사*

사물은 언젠가 자기를 다 비운다.

빈 로션 통을 흔든다.

써버린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나를 반쯤 비웠다.

지나간 나는

장밋빛 꿈을 얼굴에 바른다.

잊은 거리를 걷고 있지.

뒤도 안 돌아보고 뒤로 가고 있지.

누군가 살던 집에 비우지 못한 말들이 산다.

숲은 어떻게 자기를 비우면서 채워지나요.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으며

나무의 끝을 올려다본다.

더는 할말이 없는 로션 통이 가득 비어 있다.

박시하 / 카사 로사*

* Cassa Rossa. 헤르만 헤세가 살던 집.

(박시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문학동네, 2016)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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