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 / 도플갱어

2020. 7. 31. 11:59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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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 도플갱어

문을 닫자 이곳은 암전이다 우린 재채기로 서로를 알아봤다

새벽 네 시, 당신을 찾으려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당신이 데리러 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알몸으로

한 칸씩 부서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한 움큼 집어 갔다

추락한 후 우리는 딱 한 번 만나 시계를 똑같이 맞추고 헤어졌다

당신은 정전된 과일을 밟으며 갔다

당신이 조립한 마지막 칸

그 방에 걸려 있는 그림 속

쌓인 사탕 더미에서

오렌지 주스가 흐르는 새벽 네 시

나는 야채 칸 모양으로

오랫동안 녹아 있었다

우리의 고향은 아주 먼 곳이지만

당신과 나는 딱 한 번 만나 발목에 찬 시계를 똑같이 맞추고 헤어졌다

문을 닫으면 북반구의 어둠이 시작되고

이제 당신은 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손미 / 도플갱어

(손미, 양파 공동체, 민음사, 2013)


https://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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