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진 / 미래의 연인 ― 끝의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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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 미래의 연인 ― 끝의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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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가 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시간

머리카락도 처음엔 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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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똑같은 구름이 평생 너를 따라 다녔다 그게 심심해서

금요일과

저녁의 경계선과

옥상에서 부는 바람과

봉지 안에 담긴 캔맥주와 우린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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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계절을 나눠 쓰던 밤과 방과 바깥들

양치질을 하며 마주 보고 선 우린

서로의 얼굴을 베끼며 웃곤 했다

손톱들이 말하지 않고 조는 모양으로

서로의 등으로 스며들면 나오던 너의 취미들

그런 날들의 문 밖은 대체로 하얀 태양처럼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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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간열차가 좀 더 어두워지기 위해

달리는 밤과 많이 추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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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는 서로 인사하지 않는 게 인사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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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에서 겨울이 새는 소리가 났다

코에서 피를 흘리며 다른 색으로 돌아앉고

나는 가루약처럼 조금씩 나눠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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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정들이 이 세계에서 하나의 전기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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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쓰는 반성문처럼 숨을 몰아쉬며

굳어가는 너의 색깔을 내 동공 안으로 쓸어 담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등 뒤에서

내 것이었던 너의 손을 바라보았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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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종이에 싸놓은 면도칼을 꺼내 내 손목이 깨물게 하고

고개를 들어 검은 바탕의 하얀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에서 더운 비가 내리고 나도 점점 더워지고

우린 같은 색깔로 간이역 바닥에 흘러

코스모스 안으로 얇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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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들을, 저녁의 경계선을, 옥상에서 부는 바람을, 봉지 안에 담긴 캔맥주를

풍경에 걸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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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는 머리카락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잘 깨진 구름이었다

 

 

 

이성진 / 미래의 연인 ― 끝의 무성영화

(이성진, 미래의 연인, 실천문학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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