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 겨울은 말한다
2020. 8. 22. 13:01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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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 겨울은 말한다
나비들이 내는 소음 없이
우리가 어떻게 첫 새벽의 여명을 알 수 있을까?
이 도시는 잡담이 가득하고, 여자들은 거세된 애완동물을 기르지
너는 어느 도시에도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자
바람 소리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네가 이동을 멈출 때 나무는 거기에 뿌리를 내렸고
동물은 황홀한 잠에 빠져들었어
흰색 위에 검은 사각형이 포개진 말레비치 그림처럼
네가 내게 비밀을 건네주는 사이
창문은 경련하듯 켜지고 또 꺼졌다
이 불꽃 뒤에는 누구의 얼굴이 숨어 있을까?
조용히 누워 회색 침대보로 나를 봉인할 때
겨울 빨래가 빨랫줄에서 삐걱거리듯
문장의 꿰맨 자리가 한 땀씩 터질 때
빙산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보라색 여명을 볼 수 있는 입지점이 필요해
그러나 내가 듣는 것은 새파랗게 질린 저녁에 관한 것
임종 전의 환자처럼
잿빛으로 도망치는 혀에 관한 것
수첩을 찢어 방바닥에 날렸다
세계를 반죽하기 위해 내가 아는 건
향기를 만지고 맛보는 밤의 감각
죽은 자의 눈 위에 얹힌 패랭이꽃의 무게
겨울은 내게 말한다; 너를 신비로 가르쳤으니
이제 말하여라
내 유골 가루를 바위 위로 흩뿌리고
얼음이 장밋빛으로 물드는 순간에
어떻게 사랑이 시작되고
어떻게 내가 이 세계에 아름다움을 더하는지
김연아 / 겨울은 말한다
(김연아, 달의 기식자, 중앙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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