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 먼지색 입술에 입맞추네
2020. 8. 22. 12:59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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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 먼지색 입술에 입맞추네
한 사내가 달을 지고 검은 산을 내려간다
밤은 아름답고
멀리서 죽어가는 소리들
나의 내부에선 음악이 멈추었다
내 그림자를 보려고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너무 많은 환각이 나를 갉아먹었다
이 몸의 원시적 발성은 어디서 오는 건가
오늘 언어란 뿌리를 잘못 내린 울음 같아
어떤 진동도 섬광도 없이
당신이 내 안에 스며들어 오고
당신의 아버지의 어머니가 스며들어 오고
나는 그 모든 나이와 함께 있다
연인의 과거를 노래하는 여인처럼
당신의 입술은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
서쪽으로 몰려가는 청회색 구름 같은
암브로시아 성가
흩뿌려진 하얀 재
당신은 삶과 죽음의 숙명적인 쌍 밖으로 표류한다
당신이 타고 있는 배는
아무 데도 없는 곳을 맴돌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당신은 거세된 듯 울리는
클라브생 소리를 좋아했지
지구처럼 숨을 뱉어내어 달을 부풀리고 싶어 했지
우주 공간에 응달을 만드는 성간먼지처럼
영겁의 시간이 앞뒤로 걸쳐 있으니
우리 높은 산에 올라 밤의 정맥에 불이나 붙이자
무한히 동요되고, 은신하는
말들이 오늘 밤 광대하게 펼쳐질 거야
7음절의 빛 속에서 만물을 섞으며
말은 주사위의 숫자처럼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깊이가 더해져 한없이 투명해지는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말하지 못한다
모순을 감출 행간이 없다
죽은 애인들은 새벽달을 따라 지고
당신의 심장 같은 계수나무 잎사귀가 접시 안에서 타고 있다
김연아 / 먼지색 입술에 입맞추네
(김연아, 달의 기식자, 중앙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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