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꽃꽂이」

2022. 4. 20. 16:32同僚愛/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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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며칠

생활을 잠시 두고 온 것뿐인데

오늘은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날이 벌써 밝아지고 있어서 수평선이 보일 것 같아서

숲을 걷다 노래를 부르고 생선 구이를 먹다 혼자라는 단어에 가시가 박혔길래

그냥 살다 보면 다 넘어가겠지 싶었는데

그런 결론은 너무 무책임했는데 책임지는 건 또 왜 이리 싫은지

보기만 해도 좋을 이 삶을 누가 꺾어 갔으면 하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걸어보았습니다

갑판 위에 올려놓은 말린 오징어들

뜯은 빵 부스러기들

나날들

모두 당신 것이지요

눈빛을 부러뜨리고 도망쳤습니다

구두를 벗으니

살갗이 까진 뒤꿈치

바다는 혼잣말을 하지요

계절을 실재하는 것으로 증명하기 위해

비와 눈이 내리고

나무는 열매와 잎을 맺고 열매와 잎을 떨구고

바닥은 낙엽을 치우고 발자국을 새기고 두들겨 맞은 사람이 쉴 수 있도록 몸을 내어 주고

사람과 만나고 사람과 헤어지고 사람과 죽는 일

다음 세대 다음 세기가 있어야만

우리는 비로소 지난 일이 될 수 있다

파도가 부지런히 몰고 온 물의 가능성에

발끝을 적실 뿐이지요

그렇다면

가능하지 않은 물이 되고 싶습니다

무효한 석양 아래서

그림자의 발목만 두고 옵니다

취하고 싶습니다 이거 너무 약합니다

강한, 더 강한 사건을 주세요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한

요구한 대로 조명이 어두워지니

이제야 모든 창문을 벽으로 볼 줄 압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무 팔을 붙잡고

차가운 가로등에 기대 오물을 뒤집어써도

발견되지 않을 만합니다

당신 없이도 지내볼 만합니다

나날이 죽어가고 있는데

계속 주어지는 생활

생활을 버리자 또 다른 생활이

침대를 흔들자 삐걱거리는 소리

헤어리는 뜻은 안감

다정한 목소리는 겉감

입어보니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릎까지 오지도 않는 생일

이런 걸 누가 입니

어울리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듯이

검은 풀밭에 엎드려 자신의 상처를 핥는 길고양이는

태어나자마자 주인을 잃었을 듯합니다

일종의 자가수분인 셈입니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 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흩뿌리는 꽃가루

거기에 몰려드는 각기 다른 유서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무슨 모양일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세상에 내놓을 푸념조차 없어

몸이 바싹 마르더라도

우리를 예쁘게 묶어주세요

아무렇게나 의미하세요

너무합니다

단 하루

잘 자라고 싶었을 뿐인데

from Mink Mingle

 

 

 


 

 

 

2021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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