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꽃과 생명」

2022. 1. 13. 13:45同僚愛/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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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불빛의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비로소 반지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는 마취가 풀리려면 세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절대 자세를 바꾸지 말고 그대로 누워 있으라고 했다

회색 커튼 너머로 어느 한 노인이

마른기침을 하며 오줌통에 소변을 보고 있었고

적당한 무기력은 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퇴원하는 날 새로운 반지를 하나 살 거라고 말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주사도 빼 드릴게요 같은 말들이 일상적으로 들렸고

너는 이곳의 벽이 흰색이 아니라 하늘색이어서 좋다고 했다

그런 건 참을 수 있었다

바지에 묻은 소고기뭇국을 스스로 닦을 수도 없을 때마다

밀려오는 아침 속에서 항생제가 한 방울씩 낙석처럼 떨어질 때마다

주먹을 쥐어 보기도 하고

옷을 벗어 봉합된 자국을 매만지기도 했다

너는 생화보다 조화를 선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비누로 만든 장미 꽃다발을 들고 와 내 품에 안겨 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는 너는 내가 볼 수 없는 나무를 보며

바람이 저렇게나 많이 불고 있다고 곧 쓰러질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노인이 기침하지 않는 밤이 불안했다

그렇구나,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그렇지만, 말하며 다시 데려오고 싶은 순간들

추분과 춘분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우리는 마음을

척력으로만 쓰는 일도 그만두었다

괜찮다고

반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얼른 건강해져서 나랑 같이 맞추러 가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단지 반지 하나를

손에 오랫동안 쥐고 있다가

식탁에 놓는 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었다

죽어 본 적 없는 꽃에선 향기가 났다

from Hans Eiskonen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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