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림 「언덕 없는 이별」

2021. 2. 24. 20:59同僚愛/주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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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서관 통로에서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어떤 영혼이 지나온 길고 무거운 한숨

죽음의 섬이라는 제목의 스위스 화가 그림이 걸려 있다

키스를 나눈 도서관 창문으로 벚나무 가지들이 들어왔고

마침 깨어난 개구리가 아무도 없는 밤의 연못을 헤맨다

우리는 그때까지 어떤 것으로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그때 조용한 가축들의 울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의 마른 등 뒤로 십일 번 트랙을 들려주었고

너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연주자의 긴 이름을 다 외울 수 있었다

그때 시간은 구소련 음악가들의 무대처럼 춥고 넘쳤지만

세상의 이목을 피해 천사가 연주하던 곡은

실은 신의 조롱으로라도 다시 만나고 싶었던 그대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나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화면 속에

너는 흑백으로 죽어간다 우리는 침묵을 깨는 입맞춤* 사라진다

*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from Anh Vy

 

 

 


 

 

 

2013 문장웹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