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림 「모티바숑*」

2022. 4. 20. 16:30同僚愛/주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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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겨울은 늘 세 번째 전생 같다 결혼식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어 류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어 결혼식 사진이 나왔는데 누구도 날 찾지 못해 프랑스에 머문 친구들은 그런 말을 자주 했어 갔다 오면 정신병자가 되거나 우울증을 앓게 된대 가보지 않고 앓는 병은 어떤 걸까

 

하녀방이라 불리는 곳에 살았어 옥탑으로 민트색 바람이 불지 처음엔 소공녀 다락방을 떠올렸어 파리에 동화 같은 건 없는데 거기선 늘 바닷물에 발이 젖는 꿈에 빠져 방 모서리를 타고 들려오던 목소리

창이 그리워 생샤펠 성당에 갔어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굴절된 빛들이 창을 통과하고 갑자기 유리들이 와장창 머리 위로 쏟아진대도,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어둡고 아름다운 것들을 믿어 오는 일을 그것이 쏟아지는 것을 복원가들은 왜 천사의 한쪽 팔을 방에 숨겨 두었을까

하녀방은 버려진 축사 같아 종종 창을 바라보며 열기구로 탈출하는 건 어떨까 신물을 보고 서독의 부를 부러워한 동독 사람들처럼

학교에서는 이집트, 터키 애들 틈에서 발표란 걸 했지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카페에서 맥주와 라자냐를 떠먹는 날들

하루는 흑인 남자가 다가와 남는 라자냐를 줄 수 있냐고 물었고

식당 주인은 그를 쫓아냈지

발밑을 걸어 다니는 비둘기 떼

정오의 눈부신 도시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는 서 있었고 방학에 남부에 놀러가서도 친구 같은 건 사귀지 말자고 결심했지 아니 북부든 남부든 친구란 것을 가진다면

오늘은 소도시 예술 대학에 모티바숑을 제출하고 유화를 샀어 눈코입이 피와 선으로 흘러내리는 초상화 온통 흐르는 피로 가득한 코튼 모스 모스 류, 우리 중 하나가 멈출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이 거리는 자비를 보여주지 않을 테지 내가 죽으면 가난한 새 주인이 올 테고, 떠나는 유학생에게서 산 침대가 놓이고 그 아래 고양이들은 혼자가 되겠지

* 불어로 자기소개서.

from Thibault Penin

 

 

 


 

 

 

2021 문장웹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