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2020. 2. 28. 20:46同僚愛/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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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진정제를 맞고 나는 웃는다

이상한 매를 맞은 소년처럼 웃는다

책상 서랍에 두고 온 책받침 생각처럼

웃는다

문을 만지면

손바닥이 노래진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너한테 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없었지만

말을 사랑하는 우리의 숫자들이 웃는다

문을 열면

회복실일까?

이야기나 짜는 생활이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되지

이 이야기를 생활로 바꾸어도 시가 되지도 않겠지만

문을 닫아 두면

줄타기나 줄넘기나 거기서 거기란 생각

어느 날 이상하게 슬픈 플립을 연 후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내 눈에게 보내는 타전이었다

 

 

 

김경주 / 먼저 자고 있어 곁이니까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 민음사, 200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