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불면의 스케치」

2021. 7. 15. 17:14同僚愛/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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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고양이 한마리가 아름답게 무뎌진 발톱으로 분리수거된 비닐을 뜯자 구름과 모래가 뒤섞인 저녁이 툭 터져나왔다. 오래 자란 수염을 태운 혹독한 냄새를 풍기며.

오랜 정전 속에서 매일 우리는 함게 모여 촛불을 불었다. 훅 태양이 한쪽으로 길고 까맣게 누운 사이, 우리집에는 검은 모자를 뒤집어쓴 이방인처럼 어젯밤이 찾아와 뜬눈으로 묵어갔다. 꺼진 줄 알았던 촛불은 되살아났다.

촛불과 촛불 사이에 놓인 침대

입술과 입술 사이로 빼문 허연 혀처럼

흘러나와 있는 단 한 조각의 미명

수북한 음모는 우리를 길 위에 그려넣던 그가

너무나 지루해서 연필을 쥔 채 깜빡 졸았던 흔적

창문이라는 맨홀 속으로 모래시계 속의 모래처럼, 우리는 산산이 부서져 서로 뒤섞이며 떨어진다. 지붕 위로 촛농처럼 비가 떨어진다. 떨어지던 비가 허공의 줄기를 확 잡아채 피운 나무 잎사귀들. 빗줄기를 잔뜩 거머쥔 가로수 가지마다 차갑게 젖은 말줄임표가 밤새 빼곡히 돋아 있다.

내 머릿속에는 쓰러진 모래시계가 하나 있다. 창문을 등지고 모로 누워 뒤척이면, 망자가 원탁 위에 뒤집어놓고 간 모래시계처럼 그제야 한쪽 귀에서 한쪽 귀로 흘러들어 쌓이는 구름.

머리맡에 죽은 향유고래 한마리가

거대한 느낌표처럼 떠밀려와 있다

늙은 고양이의 무뎌진 발톱이 아름다운 장식처럼

온몸에 박힌 구름 한마리가

창문까지 떠내려와 있다

from Jr Korpa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