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할린」

2021. 1. 13. 20:20同僚愛/유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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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보다 못한 그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할린에게 물어보라 했다.

할린은 죽은 자이지만

묻는 것에 대답하는 자이며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지만

믿기도 하여서

할린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나는 내가 죽는 날을 알고 싶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날을 향해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아마도?

나는 어떻게 죽는지 그 또한 알고 싶었다.

그런 게 왜 알고 싶어?

넌 알고 싶지 않아?

난 알고 싶지 않아

네가 알게 된 것을

내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언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싶어?

모르고 싶어

너는 알고 싶은 게 없어?

나는 알고 싶은 게 없어

아는 것도 전부 잊었으면 좋겠어

나도?

가끔은 너도

언젠가 그도 할린을 찾은 적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할린을 찾으면

할린이 올 것이라 했고

세상 일이 그러하듯이

전과 같을 수는 없을 거라고

그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이라고

나는 전과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할린을 찾았을 때

할린이 알려 준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혼자서 죽을 것이며

죽고 난 뒤에는 죽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죽고 난 뒤에 나는 죽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할린이 물었다. 죽은 것을 알아서 무얼 하려고?

내가 죽은 것을 말하자면 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할린이 말했다. 자비는 산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비는 무엇인가요?

네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 후로 할린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from Yogesh Pedamkar

 

 

 


 

 

 

유진목, 작가의 탄생,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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