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 불면
2020. 7. 1. 21:17ㆍ同僚愛/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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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불면
해안가를 따라, 썩어가는 물속에서 고양이의 머리뼈를 건졌을 때 살찐 나의 몸이 못내 부끄러웠다 기괴한 형상의 돌들이 온갖 비유들을 모아쥐고 굳어갔지만, 그게 그들의 정처일 리 없었다 홉뜬 눈에 비해 풍경은 늘 비좁았으므로, 신발을 양손에 나누어 들고 얼룩진 눈을 한 채 새벽을 기다렸다 그날의 그림자는 꼬리를 길게 끌며 사라졌다
배웅과 마중,
서로를 견디는 방식
어떤 증식을 위해 이토록 많은 모래들과 떠도는 바람이 필요했던 걸까 더럽혀진 몸을 만질 때마다 자궁 속에서 순하게 죽었다는 남동생이 부러웠다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고 잠들 수 있을까? 감은 눈의 흰자위가 빠르게 녹아들면 젖은 나무들은 백야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불완전한 더듬이를 뻗어 잊혔던 풍문을 삐걱 열어본 순간, ……그게 내 얼굴일 리 없다, 그게 내 얼굴일 리가 없었다
파도가 밀어주는 계단 한 칸마다 발자국을 남기며
뼈 없는 표정들만 길게 누웠다
이혜미 / 불면
(이혜미, 보라의 바깥,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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