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주희 / 저물녘의 일

2020. 8. 11. 23:01同僚愛

728x90

 

 


고주희 / 저물녘의 일

누워서 멀어지는 구름을 보았을 뿐인데

눈물이 났다

보이지 않는 파동이 긴 고해처럼 흘렀다

제지기오름에서 솟구치던 맥박의 떨림

가슴을 치고 때리는 나직한 소리

바람에 의연한 나무와 필사적으로 흔들리는 나뭇잎들

곳곳 마음인가 싶어 눈을 감았다

감아도 흐르는 얼굴 위를

초여름 감기처럼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이제 정말 다 왔다며 손을 이끄는

슬프고 다정한 예감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바람 소리 멀어지고

나는 지친 새처럼 앓고 있다

누군가 급히 길을 내려가고

예고 없이 몰려오는 먹구름

동공에 맺힌 서로의 폭풍을 마주하며

이미 젖은 사람의 입술에

내 모든 걸 걸었었다

 

 

 

고주희 / 저물녘의 일

(고주희,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파란,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同僚愛'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용목 / 기념일  (1) 2020.08.12
고주희 / 확장되는 백야  (1) 2020.08.11
김경후 / 겹  (1) 2020.08.11
허준 / 고백의 탄생  (1) 2020.08.10
이병률 / 미신  (1)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