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 냉장고의 어법
2020. 10. 24. 00:45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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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냉장고의 어법
사과가 반쯤 썩었다
아픈 쪽에서 단내가 난다
썩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는 법을 배웠다
죽음의 향기로 내일은 선명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사랑이 크게 들린다
열면 환하고 닫으면 캄캄하다
다친 어깨로 자신의 어둠 쪽으로 돌아눕는 것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썩어가는 사과가 썩지 않는 몸 한쪽을 들여다보듯
이별은 훔친 마음을 다시 훔치는 것이다
이빨을 세게 물고
권투선수처럼 두 뺨으로 웅웅거리는 냉장고
열어도 닫아도 속은 비리다
이별도 그러하다
때린 뺨을 다시 때릴 때 젖은 두 손이 아름답다
두 눈 사이가 너무 가깝다고 생각한 탓이다
서안나 / 냉장고의 어법
(서안나, 립스틱 발달사, 천년의시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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