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 퇴적해안
2020. 12. 24. 22:26ㆍ同僚愛/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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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 퇴적해안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어릴 적 보았던 새하얀 눈밭
살면서 가장 슬펐던 때는 아끼던 개가 떠나기 전
서로의 눈이 잠시 마주치던 순간
지루한 장마철, 장화를 처음 신고 웅덩이에 마음껏 발을 내딛던 날, 그때의 안심되는 흥분감이나
가족들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농담에 서로 한참을 웃던 날을 무심코 떠올릴 때 혼자 짓는 미소 같은 것들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들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평범한 주말의 오후
거실 한구석에는 아끼던 개가 엎드려 자기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얘가 왜 여기 있어 그럼 지금까지 다 꿈이야?
그렇게 물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개만 엎드려 있었다
바깥에는 눈이 내린다
나는 개에게 밥을 주고 오래도록 개를 쓰다듬었다
황인찬 / 퇴적해안
(황인찬, 이미지 사진, 현대문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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