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미시령」

2021. 1. 13. 20:18同僚愛/유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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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터널을 지나 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평생을 걸어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눈 덮인 도로에 다리를 끌며

아버지는

오늘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참을 찾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여기가 어딘지

언제인 것인지

아버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방금 네 엄마를 묻었다

일찍 왔으면 너도 도왔을 것을

아버지는

곱은 손을 내밀어

헤드라이트에 스치는 눈발을 어루만졌다.

아버지

아버지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나는 손을 뻗어 김이 서린 유리를 닦았다.

무엇이든 잊지 않으면

너도 나와 같이 되고 말 거다

아버지의 눈꺼풀은 얼어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너에게 계속

연락한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너는 혼자 생겨난 것처럼 살고 있더구나

아버지의 눈은 검게 패이고

몸에서는 푸른 김이 새어나왔다.

아버지

우리가 함께였을 때

사람이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어요

그사이 흐려진 유리를 닦아

아버지가 나와 같이

거기에 있도록 했다.

아버지의 얼굴은 차고

매끄럽고

젖어 있었다.

살던 대로 사는 것이 너를 이 땅에 살게 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차를 움직여 한참을 달려갔다.

 

 

 

from The Humantra

 

 

 


 

 

 

유진목, 작가의 탄생,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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